혁명일화

휴식각이 분교로 된 사연

주체65(1976)년 9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황해북도 연탄군 신흥리(당시)를 찾으시였다.

농사와 관련한 교시를 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행한 일군들에게 휴식각을 가리키시며 저 집은 무슨 집인가고 물으시였다.

동행한 일군들은 그이께 이곳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하실 때 잠시나마 휴식을 보장해드리기 위하여 지은 집이라고 보고드리였다.

그러는 일군들에게 그이께서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맙다고, 그러나 자신께서는 인민들속에 들어가는것이 제일 좋다고 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강냉이밭이 무연하게 펼쳐져있는 안골쪽의 마을을 가리키시면서 이 골안의 어린이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고 물으시였다.

학 생들이 신흥고등중학교(당시)에 다니며 통학거리는 2. 5㎞나 된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중학교가 자리잡고있는 신흥리소재지쪽을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중등반학생들은 일없겠지만 인민반학생들의 통학거리로는 좀 멀겠다고 하시며 저 휴식각을 신흥고등중학교 분교로 잘 꾸려 인민반학생들의 교사로 리용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휴식각이 자리잡고있던 이곳에는 인민반학생들을 위한 신흥고등중학교 은덕분교가 생겨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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