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일화

언제나 인류의 마음속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주석 (1912년-1994년)께서는 국가령도자로서 연 7만여명의 수많은 나라 정계, 사회계 인사들과 지도자들을 만나시였다. 그들속에는 일본 김일성저작연구회 회원 시노하라 기미도 있었다.

인민을 위해 탄생하신분

일본의 공립학교 교원인 기미는 집단보다 개인주의, 인간의 존엄보다 돈을 더 추구하는 일본사회에서 학생들을 옳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자기딴의 리상과 욕망을 가지고 여러모로 애써왔다.

이러한 때 그는 조선을 방문하여 주체사상이 전면적으로 구현된 이 나라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에 기초하고있는 주체사상의 위대한 생활력을 깊이 인식하게 되였다. 특히 평양산원과 인민대학습당참관은 그에게 있어서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일본이나 미국 등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의 산원이나 도서관은 어디까지나 리윤을 추구하였던것이다.

평양산원과 인민대학습당을 돌아보면서 그는 인민대중중심의 조선의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실시되는 무상치료제, 무료교육제 등 인민적시책들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럴수록 평양산원과 인민대학습당과 같은 인민을 위한 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워주신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인민관에 끝없이 매혹되였다.

조선방문후 기미는 자기의 인상기에서 김일성주석은 정녕 인민을 위해 탄생하신분이시며 한평생 인민의 복리증진과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절세의 위인이시라는것을 가슴깊이 새기게 된다고 토로하였다.

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는분

김일성주석께서 서거(1994년 7월 8일)하신 후 두번째로 된 기미의 조선방문은 그이께서 시대와 력사, 조선인민앞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들에 대하여 보다 폭넓고 깊이있게 파악하는데 바쳐졌다.

주석께서는 일본의 군사적강점(1905년-1945년)하에 있던 조선을 해방(1945년 8월 15일)하시고 당(조선로동당)과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를 창건하시였으며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의 자주독립을 수호하시고 뒤떨어졌던 나라를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사실 20세기 조선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진보와 반동간의 치렬한 대결장으로 되였으며 더우기 미국을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주되는 공격대상이였다.

그러나 조선은 정의의 수호자이신 주석께서 계셨기에 제국주의자들의 정치, 경제, 군사 등 각 분야에 걸치는 끈질긴 압박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사회주의붉은기를 꿋꿋이 지키면서 자주의 길로 힘차게 전진할수 있었다.

평양체류기간 그는 김일성주석을 그리며 조선인민만이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들이 금수산기념궁전(당시)과 만경대고향집(주석의 생가)을 끝없이 찾는것을 목격하면서 그이는 만민의 심장속에 영생하시는 걸출한 위인, 누리에 빛나는 위대한 태양이시라는것을 다시금 느끼였다.

자기의 인상기를 마무리하면서 기미는 김일성주석께서는 비록 서거하시였지만 이룩하신 업적이 너무도 크고 지니였던 덕망이 너무도 위대하여 그이의 존함과 모습은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숭엄히 간직되여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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