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

평양시의 서성구역 상흥소학교 교장 한미화는 세쌍둥이를 포함하여 네 자식을 낳아 키운 녀성이다.

1990년대초엽 소학교교원생활을 하던 그가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는 걱정이 많았다. 그것은 지식인가정의 맏며느리로서 8명의 대식구를 돌봐야 하는 중임이 그에게 지워졌기때문이다.

첫아이(딸)를 낳은 후에는 교원생활을 그만두려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해후 그의 가정에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한미화녀성이 세쌍둥이를 임신하였다는것이 확진된것이다.

이렇게 되여 그는 평양산원에 입원하게 되였으며 그로부터 몇달후인 주체88(1999)년 10월 1일 252번째로 되는 아들세쌍둥이를 낳았다.

한미화녀성과 세쌍둥이 그리고 남편 손철호에게 나라에서 주는 금반지와 은장도가 전달되였다.

그의 부모들과 시부모들은 떡돌같은 손자들을 가슴가득 받아안고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한미화의 말에 의하면 태여날 당시 몸무게가 각각 1. 6㎏, 1. 2㎏, 1. 7㎏이였던 세쌍둥이가 보육기에서 몇달사이에 4㎏이상으로 되였다고 한다.

평양산원에서 퇴원한 세쌍둥이는 평양육아원에서 4살까지 국가의 부담으로 자라났다. 그 나날 세쌍둥이는 담당의사, 담당간호원, 담당보육원 등 10여명의 《어머니》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세쌍둥이는 무료의무교육을 받으며 축구소조, 음악소조, 미술소조에서 재능의 나래를 활짝 펼치였다. 그후 조국보위초소에 섰던 그들은 제대되여 지금은 청년일군들을 양성하는 금성정치대학에서 공부하고있다.

사실 한미화녀성이 세쌍둥이를 낳았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교원을 그만두고 가정을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권고하였다고 한다.

평양의학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사업하고있던 시아버지가 나약해지는 그의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어느한 기관에서 연구사로 일하고있던 그의 남편도 한미화에게 지식과 기술로써 나라의 은덕에 보답하자고 고무해주었다.

한미화는 후대교육사업에 헌신하여 학교를 3중영예의 붉은기학교로, 전국적인 본보기학교로 만드는데 적극 기여하였으며 학생들의 교육교양에 이바지하는 새 교수방법들을 창조도입하여 교육학석사로, 10월8일모범교수자로 되였다.

지난해 평양시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된 그날 사람들이 저저마다 축하해줄 때 그는 어머니의 본분,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려고 했을뿐이라고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오늘 그의 가정에 외손자까지 생겨 갈수록 기쁨이 넘쳐나고있다.